어려서부터 난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아버지께서 쉬는 날이면 어머니와 함께 어디든 갔다.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어디 가본 사람 하고 물어보시면 항상 손을 들었다고 한다. 뚜렷한 기억에 없는 여행 장소 들지만 부모님과 함께 했던 곳의 따뜻한 햇살의 느낌,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잘 때 약간의 비릿한 물 냄새, 오래된 민박집의 평상에서 구워 먹던 삼겹살, 그리고 내주시는 이불의 포근한 느낌의 이불. 모두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아버지, 어머니께서 여행을 간다고 하시면 따라나설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선 '다른 집 아이들은 같이 가자고 사정사정해도 안 가는데 넌 다 큰 놈이 왜 따라오냐' 말씀하셨다. 나 역시 무뚝뚝하고 말이 많이 없는 편이라 '그냥요~' 하고 넘겼지만 그 어릴 적 기억 덕분이다. 나도 나중에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면 아버지처럼 다정해야지,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지 그리고 내가 부모님과 같은 부모가 되어야지 생각하고 다짐했다.
그렇게 난 성인이 되었고 결혼을 하여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멜버른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아내와 연애를 할 당시에 한국에선 서로 일을 하고 있던 터라(한국에서 주에 하루를 쉬었다.) 많은 곳을 여행하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새벽 동네 술집이 우리 여행지였고 동네 공원 산책이 여행이었다. 그러다 멜버른행을 결심하고 결혼을 앞두고는 서로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결혼식 전 잠깐 시간을 내어 떠난 곳. 필리핀의 보라카이였다. 난 보라카이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았던 터라 이번에 가면 3번째 방문이었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아 아쉬웠던 그 아름다웠던 함께 보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무리한 일정들이었지만 우린 떠났다. 아내는 해외여행이 처음이라며 무척이나 들떠하며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 공항에서 신나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모습, 비행기를 탈 때의 모습,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무언가 맘이 짠했다. 열심히 해서 세계 여러 곳을 함께 여행하며 더 예쁜 것들을 많이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우린 꿈만 같던 함께 했던 4박 5일의 첫 해외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요즘도 아내는 보라카이에 다시 가고 싶다고 얘길 한다. 꼭 다시 가자 여보. 그리고 우린 결혼을 했고 신혼 여행으로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거의 일주일 만에 호주로 왔다. 신혼여행얘기도 풀어보고 싶은데 그건 따로 주제로 두고 쓰고 싶어 이번 글쓰기에선 간략하게 줄인다. 아내에겐 싱가포르, 호주도 처음이었다. 이곳 호주에서의 생활이 벌써 6달 가까이 되어가지만 아내는 아직도 우리가 이곳에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말하곤 생긋 웃어준다.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다. 아내를 위해서라면 슈퍼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행에 관련한 글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여행'이 주는 의미와 그 느낌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문득 별 다른 것이 여행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꼭 멋진 곳을 가야 하고, 멋진 호텔에 묶어야만 여행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릴 적 나보다 큰 배낭하나 아버진 텐트, 배낭 어머니는 아이스박스, 배낭 짊어지고 버스를 두 번 세 번 갈아타 갔던 집에 자가용도 없을 시절 버스를 세 번씩이나 갈아타고서야 도착했던 계곡이 그랬고, 일이 새벽에 끝난 나와 아침 일찍 출근하지만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서로를 위해 보냈던 시간 작은 술집 '고모네'가 그랬다. 그 어떤 돈을 주고도 경험할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여행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아침 일찍 일어나서부터 잠드는 그 순간까지. 매일 그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무엇이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마주하는지가 중요한지 느끼는 요즘이다.
매일 하루의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모이고 모여 내 인생이라는 여행이 됩니다. 인생을 길게 바라보고 지난날을 돌이켜 봤을 때 우리가 화를 내고 속상한 순간들은 정말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서로 사랑하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바쁜, 짧은 나날들입니다. 우리 각자만의 여행이 행복한 여행일지, 악몽 같은 여행일지, 결국 그것을 결정하고 느끼는 것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니, 우리 모두 멋진 여행을 만들어 보아요.
-아내는 마주 앉아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마시다 남은 레드 와인 반 병을 마시며 글을 쓴다. 이 순간 너무나 행복하다. 긴 하루 마지막 너무나 완벽한 여행의 마무리. 2023년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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