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아내가 된 유진이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앞날의 계획을 하나씩 이야기하던 때였다.
유진이는 이종사촌 언니들이 해외에 살고 계셔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다고 했다. 한 분은 미국, 한 분은 캐나다. 나야 20대 때 해외 생활 경험이 많아서 크게 걱정이 없었지만, 유진이는 해외 경험이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자취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 둘의 출발선은 꽤 달랐던 셈이다.
요리를 그만두려 했던 마음
이건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니까, 이게 답이다 아니다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꼭 알아줬으면 한다. 사실 어떤 직업이든 언어가 되고,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자격(영주권)만 뒷받침이 된다면, 지금 한국에서 받는 대우나 근무 환경보다 특정 국가에서 사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더라. 호주라든가, 미국이라든가.
그리고 그때 나는, 한국에 있으면 오랫동안 해온 요리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돈이었다. 물론 돈만이 삶의 방식이고 척도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할 나이쯤 되니, 요리사로서, 셰프로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근무 시간은 길고 노동에 비해 급여는 낮고, 주말이며 공휴일이며 다 나가서 일하는 환경에서 보통의 가정을 꿈꾸기가 어려웠다.

물론 한국에서, 현업에서 정말 잘하시고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 다만 내 경우엔 행복한 가족,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꿈이었기에, 그렇게나 좋아해서 해왔던 요리를 두고 조금은 비겁하게 핑계를 대며 다른 일을 하려고 했던 거다.
"그럼 우리 해외 가서 살까?"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서로 솔직하게 했다.
유진이는 그때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그만두려는 모습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러다 대뜸, 그럼 우리 해외 가서 살까? 하고 유진이가 물꼬를 터줬다.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우린 캐나다와 호주, 두 나라로 후보를 좁혔다. 결국 영주권을 받아야 그 나라의 혜택을 제대로 받으면서 잘 지낼 수 있으니까, 나는 그동안의 학력 사항과 경력들을 하나하나 서류로 만들었다. 영어 점수도 만들었고. (여기서 잠깐. 비자나 영주권 관련해서는 나라 정책이 자주 바뀐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경험이고, 정확한 최신 정보는 이민국 공식 홈페이지나 비자 에이전트에 꼭 확인하시길.)
그러는 동안 유진이는 유튜브로 각 나라 브이로그를 찾아보면서 그 나라의 분위기를 살폈다. 처음엔 이종사촌 언니가 계신 캐나다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는데, 아내의 브이로그 시청 결과에 내 지인이 좀 더 있는 곳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최종적으로 호주 멜버른으로 정했다.

결혼식 13일 뒤, 호주행
속전속결이었다.
결혼식을 23년 3월 11일에 했는데, 출국이 23년 3월 24일쯤이었다.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짐 챙겨서 곧장 호주로 떠나온 거다. 그러니 결혼 준비하랴, 비자 준비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우당탕탕 호주 생활이 시작됐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하나씩 적다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다시 쓰고 보니, 정말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나 하나만 믿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호주 멜버른에 함께 와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우리는 함께 잘 정착할 수 있었다.
모든 영광을 최여사에게 돌립니다. 사랑해 유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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